사랑은 어디서나
1
사랑은 어디서나 마음 안에 파문(波紋)을 일으키네.
연못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동그란 기쁨과 고통이
늘 함께 왔다 사라지네.
2
사랑하면 언제나 새 얼굴이 된다.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하는 어린아이처럼 언제나 모든 것을 신뢰하는
맑고 단순한 새 얼굴이 된다.
3
몹시 피로할 때, 밀어내려 밀어내려 안간힘 써도 마침내
두 눈이 스르르 감기고 마는 잠의 무게처럼 사랑의 무게
또한 어쩔 수 없다.
이 무게를 매일 즐겁게 받아들이며 살아 갈 힘을 얻는다.
4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살고 있는 그. 이미 그의 말로
나의 말을 하고도 나는 놀라지 않는다.
오래된 결합에서 오는 물과 같은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나는 늘 그가 시키는 대로 말할 뿐인데도 ···.
5
풀빛의 봄, 바다 빛의 여름, 단풍 빛의 가을, 눈[雪]의 겨울 ···
사랑도 사계절처럼 돌고 도는 것.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빛을
내지만 변함 없이 아름답다. 처음이 아닌데도 처음 인듯 새롭다.
6
준다고 준다고 말로는 그러면서도 실은 더 많이 받고 싶은
욕심에 때로는 눈이 멀고, 그래서 혼자서도 부끄러워지는 것이
사랑의 병인가, 그러나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어 쓸수록,
그 욕심은 조금씩 치유되는 게 아닐까.
출처 : 이해인 《시간의 얼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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