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솜이 살아가는 이야기

지금 마시는 커피처럼

소솜* 2021. 9. 7. 12:20

다시 또 가을장마가 시작되었나보다.

커피를 마시며 베란다 너머

바라보는 풍경이 도시적이다.

비를 바라보는 장소에 따라

마음으로 파고드는 여운이 이리 다를 수가.

비에 젖어 색까지 진해진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 

초록빛 싱그러움에 눈길이 멈추며

추억은 이미 유년으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는다.

더없이 그립고 그리운 그 시절

더없이 순수하고 착했던 동심의 친구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그 순수했던 친구들 모습, 내 모습이

못내 그립고 못내 아쉽다.

 

엊그제 도곡동 타워팰리스3차에 사는 친구가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보고프다며

좋은 와인 있으니 자기 집에서 뭉치자 해서

어제 고향 친구 넷이 1년여 만에 만나서

어릴 적 이야기에 요즘 이야기까지 더해

서너 시간 이야기 하며 마시다 보니

와인이라지만 넷이 두 병 마시고 나니 취기가~~

차까지 두고 지하철을 타고 가서

몇 달 만에 고향 친구들과 마신 술이라서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점점 기분이 내려앉고 불편해

저녁 먹고 가라며 붙잡는 친구를 뒤로 하고

셋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콕 찍어서 말은 안했지만 

뭔가 모를 불편함과 이방인 같은 생각은

우리 셋다 같은 느낌인 거 같았다.

어릴 적 한 동네 20분 거리 안에 살면서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고구마 한개도 반으로 나누어서 먹던

친구의 배려의 마음, 순수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 위를 덮은 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뒤에

스스로 우월감을 갖게 된 현실이었다.

그게 못내 집으로 오는 내내 불편했다.

어디 친구뿐이겠는가.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할수도 있겠지

그 친구야 현실의 잣대로 보면

충분히 우월하고도 넘치지만

나야 결코 우월할게 없음에도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비에 젖은 회색빛 아파트 사이사이

짙푸른 초록빛 나뭇잎들을 보며

답답하고 높은 회색빛이 아니라

싱그럽고 눈높이가 맞는 초록빛이 되었음 바래본다.

그렇게 살았음 싶어 마음을 다시 걸러내 본다.

와인 맛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내게는 그 어느 와인보다 씁쓸하고 맛이 없었다.

비싸고 귀한 와인이라고

일부러 맛보여 준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어제 가장 맛 없는 와인을 마셨다.

이름조차 모르는 비싼 와인보다

때론 커피믹스가 훨씬 더  마음을 고급지게 한다.

지금 내가 마시는 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