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솜이 살아가는 이야기

구월이가 시월이에게

소솜* 2021. 10. 3. 19:53

못다한 구월이야기를 시월이에게 전하며

시월이에게 씽긋 웃어본다.

 

구월의 첫날,

한 달에 한 두번 물만 줄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는데

꽃대가 올라오더니 꽃을 피워냈다.

꽃은 수수한데 향기는 온 집안에

그 어떤 향수보다 더 향기롭고 기분좋게 퍼져나더니

한 달 내내 피고 지고를 하며

구월은 동양란의 향기로 시작하여 끝을 맺었다.

 

구월 열이틀~열사흘

올 여름에는 고추를 6번 땄는데

첫물 고추는 울남편이 수확을 하고

2, 3, 5, 6번째는 언니가 수확을 하고

그 중간인 4번째는 내가 수확을 했다.

저렇게 널어놓은 게 세 줄

고추를 따는 것도 더위와 모기와의 전쟁이지만

고추를 씻는 건 허리와의 전쟁이고 훨씬 힘들었다.

서너번 깨끗이 씻어 마당에 하루 말려 물기를 뺀 후

하우스에서 사나흘 말리면 바삭바삭한 고추말리기 완성

김장, 고추장, 김치, 양념까지

일 년 동안 4남매와 부모님이 먹을 고춧가루 확보!!

 

구월 열나흘~~

초가을 하늘이 너무나 예뻐

하늘맞이 가을 소풍을 갔다.

양수리 정자에 앉아 직접 싸간 도시락을 먹고

'서종제빵소'에서 커피맛, 빵맛 뿐만 아니라

물맛, 하늘맛을 제대로 만끽했다.

 

구월 스무여드레~~

뷰맛집이라고 소문난 '카페 구벼울'

배우 남상미씨 카페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정말 소문대로 뷰가 맛집 중에 맛집이었다.

강물이 어울져 흐르는 모습이

말발굽 모양을 닮아 이 지역을 제탄(蹄灘),

우리말로 '구벼울'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큰길에서 마을길 따라 들어가 자리잡은 구벼울은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절로 탄성을~~

앞으로는 남한강이 한 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눈은 시원하고, 공기는 맑고, 기분은 좋고...

뷰맛집이라 직접 가보는 게 최고~!!

 

구월의 마지막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다녀왔다.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이

참으로 정겹고 기분을 좋게했다.

두어시간 밭에 나가 쪽파와 시금치 심고

허리를 펴는데 다리까지 휘청거릴 정도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 절로 신음소리가 ㅠㅠ

평생을 밭에서 논에서 일하셨으니

부모님 허리가 굽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싶어

마음이 짠하고 아려왔다.

워낙에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셔서

짬뽕 한그릇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또 뭉클

오래오래 사시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노력을

자식들이 갚을 기회를 주셨으면 싶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구월이를 보내며 시월이을 맞이했다.

 

시월의 첫날,

팔당호가 한 눈에 보이는  '엘포레스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좋게 첫날을 열었다.

 

시월 둘째날~~

최애 카페 '나인블럭 서종'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십여년 전 그 열정, 그 미침을 불러앉혀 놓고

한참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추억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때의 그 미침은 다시는 못 느끼고

그 때의 그 열정은 다시는 못 따라할 거라고.

그래서 삶은 때가 있고

그 때를 충분히 즐기고 미쳐야 하는가 보다.

 

구월이가 한 달 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박수를 보내준다.

명절이 있어 그동안 코로나로 한 자리에 못했던

4남매가 부모님과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복으로 자리잡은 구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즐기고,

많이 행복하게 보낸 구월이가

시월이의 어깨도 톡톡 두드리며

배턴을 기분좋게 전해 주었다.

팔월이가 전해 준 행복배턴을

구월이가 받아 잘 관리했듯

구월이가 더 키워 전해준 행복배턴을

시월이도 분명 가을의 아름다움을 더해

십일월이에게 뿌듯하게 전해줄거라 여긴다.

구월이가 시월이의 손을 잡고 활짝 웃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