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솜이 살아가는 이야기

갑자기 엄청 보고프넹

소솜* 2020. 12. 27. 20:34

어느 새 해는 바뀌었고

봄꽃은 활짝 피어나고 있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 매화...

어쩌자고 한꺼번에 피어나

사람 마음을 할퀴어 놓는지

그저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네.

 

잘 지내고 있기에

잘 지내고 있어서

너무나 잘 지내기에

그렇게 마음에 새겨두며 이 봄을 전하네.

 

그냥, 어느 날 문득

그대가 애인도 아니었는데

가슴에 들어와 머무를 때가 있네그려

오늘처럼 햇살이 너무 맑은 날이라던지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든지 하는 날엔.

 

난 잘 지내고 있고

그대처럼 목표가 없는데도

늘상 약속에 치이고

감정에 치이며 살고 있다네.

 

어쩌다 한 번 쯤은

지난 시간들도 기억하게나

지난 기억들이 없다면

현실이 뭐 필요하겠나

현실이 지난 기억들을 꿀꺽 삼켜

싹 덮어버렸다면 모르지만...

잘 지내게

그리고 가끔은 기억하시게나.

그래야 자네가 날 불러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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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그동안 미루었던 정리를 시작했다.

옷, 책, 그릇, 신발, 생활용품,

편지, 일기장, 수첩, 가계부 등등

그러다 컴퓨터와 노트북,

그동안 사용한 휴대폰들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도

이번 기회에 정리 다이어트 해서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놓기로 하고

컴퓨터부터 정리에 들어갔다가 

오래전 메일을 열어 보았다.

손편지로 받았으면

잉크가 번지고 흐려졌을 만큼

시간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남아

그 시절, 그 곳으로

기억이 현실보다 더 또렷하게 데려다 놓았다.

방배동과 목동을 번갈아 가며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서

죽을 만큼 마시고,

죽을 만큼 고민하고,

죽을 만큼 열심히 살던 그 시절

그러다 아이 유학생활 정착을 위해 

잠시 몇 개월 미국에 다녀와

다시 복직을 하며

내게 보내온 메일이었던 거 같은데

어쩜 이리도 생생한 지...

그 때는

가정도,

직장도,

나라도

우리가 조금은 바꿀 줄 알았는데 ㅎㅎ

갑자기 엄청 보고프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거 맞다 맞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