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내리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자 시
정호승님의 '첫눈 오는날 만나자'
갓 내린 향 깊은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본다.
온세상을 하얗게 덮기라도 할듯
눈은 펑펑 쏟아지고
마음은 하염없이 어딘가를 그리워하고 있다.
첫눈 오는날 만나
군밤을 같이 먹으며 눈길을 걷기로 약속한 사람은 없다.
커피를 마시며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릴 일도 없다.
눈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첫눈을 기다리고 설레인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은 없지만
첫눈이 오기에 그리운 사람들은 있다.
그리운 사람들과 통창뷰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첫눈이 오는 풍경을 같이 바라보고 싶다.
첫눈이 내렸다
지금도 내린다 첫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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