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익은 '채운들녘' 어디쯤에 엄마도 논도 있을텐데
어렸을 적 새참 이고 가는 엄마를 따라
한 손에는 막걸리 주전자, 한 손에는 물 주전자를 들고 갔었는데
지금은 아버지 명의로 된 논이 몇 마지기 있다는 건 알아도
바둑판 모양을 논에서 엄마의 논을 찾질 못하겠다.
명의만 아버지이지 엄마가 절약하고 품팔아서 산 논인지라
우린 늘 엄마의 논이라 불렀었다.
처음 논을 사시고 눈물 훔치시던 엄마 모습이
뇌리에 각인되어 지금도 생생한데
그 엄마의 논에서 저렇듯 낟알은 여물었는데
들녘을 바라보시며 흐믓해 하시던 엄마 모습을
이 가을부터 영영 볼 수가 없다는 게
실감도 나질 않거니와 믿기지가 않아
시골집 옥상에 올라가 채운들녘에 오버랩되는
엄마 생각에 한참을 그렁그렁 마음이 울었다.
작년 이맘때 쯤에는 엄마의 밭에는
배추, 무, 대파, 쪽파, 총각무, 갓, 시금치, 상추 등
빈 곳이 없이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는데
올해는 언니가 틈 날때 내려가 심은
대파, 무, 쪽파만 한두둑씩 자라고 있고
나머지 밭에는 잡초가 어찌나 무성한지
텃밭을 가꾸며 사는 전원생활은 꿈도 못꾸게 할 정도로
잡초의 번식력과 생명력은 당할 수가 없다.
꽃과 나무를 유난히도 좋아하셨던 엄마가
집 둘레에 심어놓은 단풍나무도 올해는 색이 예쁘지가 않고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나던 화단도 영 시원찮음에
괜스레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사람 난 자리는 표시난다'는 옛말도 있듯이
엄마 떠난 자리는 표시가 나도 너무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열여덟 번째 엄마를 만나러 간 어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엄마와 하염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물인지 빗물인지 주룩주룩~~
한 시간여를 이야기 나누고 시골집에 다시 가보니
아버지는 아침에 앉아계시던 그 자리에 그 자세로
1도도 어긋남 없이 앉아서 졸고 계시고
tv는 큰 소리로 저 혼자 뉴스를 마구 쏟아내고 있고
시골집에 내려가면 식사 시간 이외에는
흡사 망부석처럼 앉아계시는 아버지 모습이
먹먹하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근육이 빠져 걷기가 불편함에도
정작 아버지는 움직임을 극도로 피하시니
자식은 '30분이라도 걸으셔야 한다'
아버지는 '알아서 할테니 참견 말아라'
자식이 내려가는 주말마다 근육전쟁은 마치 계륵 같다.
"엄마~~
우리 4남매는 의좋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 엄마 곁으로 가시는 날까지
정신줄 놓지 않고 스스로 잘 걸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계시다 갈 수 있게
아버지 꿈 속에 나타나 한 마디만 해줘
하루에 30분 이상은 밖에서 꼭 걸으라고.
다음 주말 엄마 만나러 또 올테니
천국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어
엄마~~너무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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